보스턴의 한국인
은 거짓말이고, 사실 내가 사는 곳은 보스턴은 아니고 우스터(Worcester)라는 도시로 보스턴에서 서쪽으로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보통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보스턴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Greater Boston (보스턴 광역지역?)으로 묶이기 때문에 어차피 구별하는게 크게 의미가 없다.
작년 4월 6일부터 일했으니 이제 곧 회사원 1년차가 끝나간다. 우리회사는 시카고가 본사인데, 우스터는 바이오로직스 (biologics)를 생산, 연구하는 연구소-플랜트가 합쳐진 곳이라고 보면 된다. 규모는 한 900명? 내가 그동안 첫 한국인이자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것 같은데, 최근 다른 비지니스 유닛에 한 분이 더 들어오신 것 같다. 나는 바이오로직스 생산공정을 개발, 연구하고 생산 (manufacturing)을 직접 지원하는 일을 해왔고, 현재는 거기에 더해 공정을 validation하고 FDA나 EMA와 같은 기관에 제출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왜 교수안하고 취직하냐고들 했는데, 취직은 솔직히 돈을 벌고 싶어서 했다. 돈 얘기하면 긴데, 우선 한국에서 학부랑 대학원 다닐땐 가난했고, 석사때는 심지어 카페 알바도 교수님 몰래 했다. 석사 연구실 월급으로는 월세내면 밥먹을 돈이 아예 없었으니까. 미국 와서 박사과정 동안은 학비랑 생활비 합쳐서 1년에 3만불을 받았는데, 세금떼면 한 달에 2000불 되려나? 아껴서 살면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남는 정도는 아니었다. 보통 학교근처 렌트가 1500불정도 하는데, 세금빼면 넉넉한 게 아니었다. 나는 박사과정 첫 2년은 미국인 룸메 1명이랑 120년된 미국식 주택에서 한 달에 각자 600불씩 내면서 살았고, 얼른 돈 벌고 싶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대학원을 다닐 때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은 돈 벌면서 아파트도 사고 나랑 부의 격차를 벌려 갔는데, 사실 그래서 박사 과정때 마음이 조급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원래 내가 성격이 급하고 목표가 있으면 마음의 여유를 스스로 줄이는 편이라, 대학원 다니면서 여행도 별로 안갔다. 생각해보니 인생 드럽게 재미없게 살았네. 그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대학원을 졸업하고, 우리 엄마말로 하늘이 돕고 땅이 도우셔서 취직도 코로나 터지기 전에 기가막히게 했기에 지금 걱정없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지금은 보스턴(우스터)의 회사원이 되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돈 버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기쁨이 더욱 크다. 나는 항상 내 인생의 새 챕터를 시작할 때, 5년 단위로 나의 미래를 계획하는 습관이 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내가 5년 혹은 10년 뒤에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종종 생각하는 데 지금은 나의 미래에 대해 조급하기 보다는 기대가 더욱 크다. 나는 내 친구들이 부동산/주식에 투자할 때 나 스스로에게 큰 투자를 했고, 지금도 투자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10년 그리고 20년 뒤 내 가치가 내 친구들이 투자한 부동산/주식의 가치보다 더 클거라고 믿는다.
2021년 3월 26일 일리노이 에반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