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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취업

지연, 학연, 혈연 중심의 미국 취업 (feat. 대학원)

by 보수동과학자 2021. 5. 1.

미국은 대놓고 지연, 학연, 혈연으로 연결된 인적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다. 이는 회사 취업과 대학원 입학을 포함해 미국 내에서 어떤 조직에 들어가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추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추천한 지원자가 합격했을 시에 캐쉬보너스도 지급한다.

우리 회사도 가끔씩 채용담당자(Hiring Manager)들이 자신이 현재 채용중인 포지션에 인재 추천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는데, 나를 채용했던 전 매니저가 최근에 추천을 부탁해 내가 졸업한 연구실의 학생을 추천해준 적이 있다 (아쉽게도 최종 면접까지 가지는 못했다).

한국은 지연, 학연, 혈연 중심의 채용을 지양하는 걸로 아는데, 사실 한국에서의 문제는 지연/학연/혈연을 통한 추천 그 자체가 아니라 추천을 통해 지원한 지원자가 대개 면접도 없이 합격한다거나 하는 불공정한 과정을 통해 입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추천은 통해 지원을 하더라도 공정한 면접 과정을 거쳐 선별된다. 미국에서 이렇게 인적 네트워크를 채용에 많이 활용하는 이유는 추천 과정에서 "신뢰도"라는 하나의 요소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지원자를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 사실 어렵기 때문에, 추천인이 보장하는 지원자에 대한 신뢰도는 큰 가산점으로 작용한다.

이는 미국에서 인턴(보통 3-4개월)이나 Co-op (6개월 - 1년 인턴 프로그램)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한데, 인턴이나 Co-op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팀에서 같이 일해봤던 지원자는 신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전혀 모르는 지원자들과는 채용 과정에서 출발선이 다르다.

이전 글에서 우리 회사에 2년짜리 석사 프로그램을 하고 들어온 분들이 많다고 했는데, 이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 회사의 본사는 시카고(엄밀히 일리노이주)에 있는데, 내가 말한 이 2년짜리 프로그램은 일리노이주의 노스웨스턴 대학(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제공하는 바이오텍 석사 프로그램이다 (https://www.mccormick.northwestern.edu/biotechnology/). 우선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Co-op이 선택적으로 포함이 되어있어 지원하고 싶은 회사의 Co-op 프로그램을 통해 "신뢰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실제로 우리팀에 이 프로그램의 2년차 대만 학생이 Co-op으로 최근까지 일했는데, 얼마전 지원을 통해 합격해 이번 여름 우리 회사로 입사한다고 한다.

이 "신뢰도"라는 요소는 미국 대학원 입학시에도 중요하다. 내가 대학원 3년차일때 학부교환연구 (또는 REU; Research Experience for Undergraduate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펜(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온 학부여학생이 나한테 배정되어 그 해 여름동안 같이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이듬해에 그 학생은 우리 학과 대학원을 지원했고, 내 지도 교수님이 그 학생이 우리 연구실에 오면 어떨 것 같냐고 내 의견을 물으셔서 긍정적으로 말씀드린 적이 있다 (우리과는 입학 후 같이 일하고 싶은 교수의 이름을 지원서에 포함시킨다). 그 여학생은 그 해에 합격해 지금 우리 연구실에서 내가 하던 연구의 후속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합격 후 그 여학생이 내게 "우리 학교는 사실 기대없이 지원했고, 자신이 지원한 학교의 대부분이 화학공학과 30 - 50위권 학교였다."고 알려주었는데, 우리 학과(화학공학과)의 그 해 대학원 순위는 2위였다 (무려 MIT 바로 밑). 학부연구생을 통해 지원할 연구실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성적이나 연구성과만큼이나 중요하므로, 원하는 대학원을 가고 싶다면 꼭 학부연구생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도 하버드는 외부 지원자를 뽑는 경우가 드물다고 내가 대학원을 지원할 때 선배한테 들었다).

내가 대학원을 다닐때 소위 네트워킹 이벤트라고 하여 많은 회사들이 학교의 대강당이나 스타디움에 부스를 차리고 곧 잡마켓에 뛰어들 학생들과 소통하며 네트워크(인맥)를 형성하는 행사가 종종 있었다. 커리어 페어(Career Fair)라고 보통 불리는데 한국의 대학 채용박람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실 나도 내 레주메를 뽑아서 이러한 네트워킹 이벤트를 열심히 다녔지만, 보통 학부생들 위주의 행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네트워킹 이벤트 자체가 나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네트워킹 이벤트들 중에는 학교 내부 대학원생/연구원간의 소통과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학회 형식의 행사도 많았는데, 오히려 이 곳에서 내 발표를 듣고 보스턴 사이언티픽(Boston Scientific)이라는 의료기기 회사에서 인턴 제안을 운좋게 받았었다.

물론 나는 인턴으로 쌓은 인맥을 활용한 케이스는 아니다. 의료기기 회사에서 R&D 인턴을 하긴 했지만, 사실 회사 경험을 쌓기 위해 한 것이지 의료기기 산업자체에 큰 관심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시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회사 웹페이지에 뜬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최종적으로 합격하게 되었는데, 어림잡아 50% 정도(그보다 적을지도)는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듯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하는 것 같다. 사실 대학원생이 인턴을 여러번 하는 것은 어렵고 가고 싶은 산업군의 회사에서 인턴을 못한 경우라면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기는 쉽지 않다. 나의 경우에는 제약회사의 인턴은 모두 떨어졌었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수님의 인맥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 교수님은 신임 교수라 회사쪽에 연줄은 없었다. 옆 연구실 교수님이 제약업계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이라 그 교수님네 학생들은 졸업하면 가고 싶은 제약회사는 골라서 가는 수준이었는데, 그 교수님의 연락 한통이면 취업이 척척되는 걸로 봐선 네트워크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셜미디어를 귀찮아 하는 내가 링크드인(Linkedin; www.linkedin.com/)은 챙겨서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커리어"라는 단 하나의 주제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거대한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은 내가 나의 경력이 잘 정리된 프로필만 만들어 놓으면, 세계 곳곳에서 일하는 동종업계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헤드헌터들에게 나를 광고하는 일종의 구인구직 마케팅 수단이 된다. 코로나가 마침표를 찍어버리긴 했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커리어페어와 같은 오프라인 이벤트에서 한명의 리쿠르터에 수십명의 학생들이 몰려 명함이라도 하나 받아보려고 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대세는 자신의 경력을 오픈하고 스스로를 마케팅해 한 명의 유능한 지원자에게 수십명의 헤드헌터들이 몰려드는, 본인 스스로가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시대로 옮겨왔다. 혹시나 미국 잡마켓에 관심이 있다면 꼭 확인해보고 사용해보길 권유한다. 채용담당자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게 바로 링크드인이니까. 참고로 이 포스팅은 링크드인에서 십원짜리 한푼도 안받고 작성되었다.

2021년 4월 30일 에반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