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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취업

미국 제약회사 이직 준비 및 면접

by 보수동과학자 2022. 3. 20.

- 이번에도 보수동과학자의 배우자가 쓰는 글입니다.

원래는 퇴직 과정이 어땠나를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취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많아 도움이 될까 싶어 이직과정/면접에 대해서 써봅니다.

미국 스타트업 회사 - 취업에서 퇴사결심까지 - https://boston.tistory.com/m/13 에서 이어지는 글

미국 스타트업 회사 - 취업에서 퇴사결심까지

참조: 보수동 과학자의 배우자가 쓰는 글 - 정들었던 회사를 떠나 이직을 한 뒤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기억을 정리하려고 쓰는 글- 졸업 이후 학교를 떠나 첫 직장은 스타트업 회사였다. 내가 근

boston.tistory.com


그렇게 퇴사를 결심하는 것과 동시에 이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게 회사를 다니면서 인터뷰 준비를 하기란 참 바쁘고 정신없었지만 오히려 퇴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이직에 대한 동기부여는 더 확실하게 되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이 때까지 했던 연구는 제약, 특히 바이오로직스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석사 때는 연료전지, 박사와 포닥땐 기체분리용 막 개발,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도 다공성 막 개발을 했었는데 주변에 비슷한 연구를 한 친구들은 대부분 정유회사에 입사했고, 제약회사로 간 친구들은 대부분 API (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s), 즉 합성약품 정제 쪽으로 갔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두 군데의 바이오로직스 제약회사에서 오퍼를 받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두 곳 모두 박사 출신들에 대한 신뢰가 있는 회사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현재 회사에서는 나와 비슷한 박사 연구를 하고 입사한 시니어 사이언티스트가 회사에서 두각을 드러낸 경우가 있어서 생각보다 팀 내에 fit mismatch에 대한 우려는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연구 내내 물질 개발과 분리 어플리케이션만 했던 내가 바이오로직스 제약회사에서 갈 수 있는 분야, 그리고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downstream processing이었다. Downstream process를 간단히 말하자면 cell culture (upstream) 이후에 불순물은 모두 제거하고 항체만 남기는 과정이다. 여러 정제 단계를 거쳐 순도 높은 항체를 만들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럼 관련 경험이 전무한데 어떻게 이직 준비를 했을까? 기본적으로 내가 경험한 직무와 그 곳에서 하는 직무를 연결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면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했던 연구와 그 연구를 하는데 필요했던 스킬셋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내가 했던 연구와 스킬셋을 살펴보면
1) 기체/액체 분리용 물질 개발
-해당 스킬셋 : 화학반응에 대한 이해 및 합성, 분리/정제에 대한 기본 지식
2) 개발한 물질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한 장비 만들기
-해당 스킬셋 : 장비 디자인, 리스크 평가, 장비 구현 (배관 등등), 분석 장비에 대한 이해
3) 2에서 만든 장비를 이용해서 성능 테스트
- 해당 스킬셋 : 실험 디자인 (Design of Experiment), 데이터 분석, troubleshooting

위 세 가지의 연구를 수행했는데, 사실 중요도나 연구의 난이도로 보자면 1>>>3>2의 순서로 나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내가 면접을 보던 회사에서 요구하는 스킬셋은 대체로 실험 디자인, 데이터 분석, 리스크 평가였던 것 같다. 그래서 준비해야 하는 레주메와 발표자료의 비중을 3>2>>>1로 정했다.

이전 회사에서 직접 만들었던 장비 - 배관 작업을 할 때에는 잡생각을 떨칠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에서 졸업 후 처음 잡마켓에 나갔던 내가 범했던 실수는 각 연구에 내가 쓴 시간에 비례하게, 그리고 "내 연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슬라이드를 준비했던 것이었다. 또 방대하게 많은 데이터를 넣어서 내 발표자료를 전문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연구와 100퍼센트 맞는 회사에 면접을 보는 것이 아니라면 청중들은 그 짧은 세미나 동안 내 연구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슬라이드는 청중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출처 https://www.pcworld.idg.com.au/slideshow/366369/world-worst-powerpoint-presentations/)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게 연구를 했는지는 가슴에 묻어두어야 한다. 결론보다는 인트로에 힘을 싣고, 데이터보다는 내가 가진 스킬셋에 집중해야 한다. 총 한 시간 세미나라고 하면 슬라이드 20 - 25장 정도로 마무리 짓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이었던 것 같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말을 많이 하는 법 보다는 천천히 쉽게 설명하는 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보통 미국 회사에서 면접을 보게 되면 1:1 혹은 2:1로 30분씩 하루 종일 - 혹은 이틀동안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Senior level 이상일 경우에는 여기에 세미나 한 시간이 추가된다. 주어진 1:1 면접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이 중요했다. 테크니컬한 질문들은 오히려 알거나/모르거나가 확실한 내용이기에 크게 문제가 안되지만 behavioral question은 미리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가야했다.

일반적으로 많이 받았던 질문은

- 커리어 골 - 10년 뒤의 본인의 모습은?
- 본인의 장/단점
- 프로젝트 매니저 경험이 있다면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는가
- 새로운 기술을 제안했을 때 팀원들의 반대가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타임라인이 빠듯한 프로젝트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할 것인가 (의사 결정 등등)

등 매우 까다로운 질문들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었나 기억을 되살려 보고, 어떤 뉘앙스로 대답할지 고민을 미리 해두는 게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특히 나와 같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상황에서는 더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면접을 받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나도 회사의 분위기를 평가하는 자리가 된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나와 비슷한 레벨이나 낮은 레벨의 사람, 즉 실무를 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는 회사의 분위기나 팀의 분위기는 어떤지 알아보는 것이 좋고, 매니저나 디렉터 급과의 대화에서는 조금 더 심도있는 대화 (어떤 성향의 사람이 팀에 잘/안 맞을 것 같은지, 팀 내에서 현재 가장 큰 챌린지는 무엇인지, 프로젝트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등등)를 하다보면 어느덧 30분이 지나있다.

그렇게 운이 좋게도 첫 회사의 오퍼를 받고 두 번째 회사의 면접을 보는 중에 기존 회사에는 그만두겠다고 말을 했다. 이전에도 말했듯 회사의 규모가 워낙 작았기 때문에 통상적인 2 weeks notice가 아닌 3.5 weeks notice를 주었다.

직장인이라면 가슴에 품고다닌다는 가영이 짤 어쩌구..

내 매니저였던 VP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전 포스팅에서 썼듯이 당장 내가 나가면 실무와 매니저가 동시에 나가는 상황에다가 프로젝트 도중이었기 때문에 예상도 못했던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3주 반 동안의 시간동안 대부분의 매니저가 그러하듯 나의 매니저도

당황 ➡️ 분노 ➡️ 부정 ➡️ 만류 ➡️ 체념 ➡️ 축복

의 롤러코스터식 감정 변화를 보였다. 인수인계를 무리해서 하느라 대상포진을 얻었지만 나는 드디어 자유가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아쉬움에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 하지만 그 후에 다시는 그 회사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물론 값진 경험이었고 이 회사에 다닌 덕에 현재 회사에 취업이 가능했지만, 가끔 미팅 중에 우리가 마치 본인의 학생인 양 소리를 지르던 창립자이자 교수인 CSO를 떠올리면 좋은 시기에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인수인계를 하던 중 회사2에서 오퍼를 받고 시카고에서 보스턴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